200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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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프도록 날씨가 좋은 날이면 생각나는 얼굴이 되고 싶다. 볼만한 연극이 나왔다는 말을 들으면 가서 보고픈 사람으로 좋은 음악감상실의 개업화환 앞에서 공중전화를 하여 불러낼 수 있는 그런 이름으로 간직되고 싶다. 늦은 비가 땅을 파고 있는 새벽에도 선뜻 다이얼을 돌릴 수 있는 전화전호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고 특별히 무얼 하는 사람이라고 나를 아는 이들에게 기억이되기 보다는 무던하고 포근한 솜이불같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같이 다니면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걸음걸이로 같이 걸으면 앞서거나 뒤로 쳐지지 않을 보폭을 갖고 누구에게나 잘 어울릴 수 있는 무난한 색상을 띤 친구이고 싶다. 그래서 그네들의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덮어주고 종각에서 시청까지 아무 말 없이 걸어도 심심하거나 부담스럽게 생각되지 않는 포근한 색상을 가진 아이라고 이름 지워 불리우고 싶다. 그런 색을 가지고도 가진 것을 모르는 아름다움 또한 지니고 싶다. 그리고 내가 알만한 분들의 결혼식이나 회갑연에 초대를 받아 축복의 대열에 서있는 영광을 얻는 것도 좋으나 산동네에 사는 나를 아는 어느 사람의 갑작스런 부고 소식을 받고 서슴없이 달려가 슬픔을 같이 하며 밤새 앉아 있을 수 있는 나눗셈의 인생을 살고 싶다. 똑바르고 경우를 갖춘 말들만을 담는 빛나는 그릇이 되기보다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마음이라도 서슴지 않고 털어놓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붉은 리트머스 종이 같은 친구가 되고 싶다. 발전을 향하여 과속으로 질주하는 나라 뒤켠에서 아직도 흙먼지를 쏘이며 썩은 이의 부리처럼 남아 있는 군데군데 돌멩이가 박혀있는 길에 연탄을 싣고 달려가는 손수레의 바퀴같은 역할을 맡은 배우이고 싶다. 때로는 엄지손가락의 손톱 밑을 파고 들어가 체증 뚫는 바늘처럼 피같은 땀,피같은 눈물에 흠씬 나를 적시을수 있는 날카롭고 곧은 친구 몇 명을 가진 행복한 욥이 되고 싶다. 아니 단 한명이라도 좋겠다. 엘리후 같은 지혜로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올바른 사상과 가치관을 갖고 충언할 수 있는 사고를 할 줄 아는 성숙한 이성을 지니면 그보다 더 좋은 멋이 어디 있을까? |

